Role of new
지식이 증가하면 의심도 어느 정도 증가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는 경험이 스며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근래, 4차 산업관련 전시를 통해 로봇 물고기를 봤는데, 피부를 좀 더 비슷하게 만들면,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 한 구별이 힘들 것 같습니다. 향후 인간형 로봇도 그럴 것 같습니다. 물고기 인데 로봇인가, 로봇인데 물고기 인가라는 표현을 통해, 물고기인줄 알았는데 실은 아니라는 것이며, 로봇인줄 알았는데 물고기라는 것인가라는 생각에 이를 수 있겠습니다. 그것이 무슨 차이인가
예수님이 보이신, 광야에 모인 수 만 명의 사람들에게 당시 빵 조각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만을 가지고 그들 모두를 배불리 먹게 하심의 기적의 때에 제자를 향해 ' 너희가 주어라 (막 6:37) "고 하셨던 모습을 통해, 오늘날 우리 주변에 너희가 주어라 와 그 명령을 받았음으로 우리가 모여, 우리 중 누군가 그 일을 자신의 방법으로 해내자 라는 접근은 유효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소유를 나누어 가난한 사람과 나눔도 그와 같은 모습이 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살펴볼 것은 그 과정에 관한 것입니다. 여러 과학 기술 발전으로 상상하기 힘든 방법을 통해 사생활의 탐색과 노출이 될 수 있는 시대의 때에, 타인의 정보를 얻어, 누군가에게 적용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그로부터 사욕을 챙기는 모습 여부인가에 따라 그 존재 모습이 평가될 것입니다. 그것은 그 출발의 의도 자체가 불순하였거나, 순수했음에도 점차 변질되고 경각심을 잃어가며, 결국 부패한 모습에 이른 것인가 아닌가 등을 여러 정황으로 발견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제외하고는, 사실 모든 사람이 이런 모습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어디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여전히 자신은 그렇지 않다 하며 사는 사람이 실은 가장 중죄인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음을 예수님은 증거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삶의 모습에는 선과 악이 공존함을 모르지 않지만, 선이 악의 앞에 있었으며, 창조의 역사가 선으로부터였는가의 의심은 가능해도 부정할 수는 없겠습니다. 나무의 경우, 이는 다음 단계인 생명체의 필요를 위해 존재하였음에도, 그 이전의 해로운 어떤 물질의 분해의 필요에 의해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며, 지구 물질의 발생에 땅속의 핵과 마그마 등으로부터 유해한 것이 발생하여 그를 처리하는 존재의 필요에 부합한 나무, 땅과 물의 미생물 그리고 그를 먹이 삼는 존재의 등장 등이 생겨났음은 인간의 판단으로 순환의 아이러니한 체계임을 알게 합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그 다음의 존재를 위한 전제 모습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땅속의 뜨거운 물질의 생성이 우선이며, 그 물질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의 물질이 우선이며, 그 공간의 물질을 존재하게 하신 그 이전의 존재가 우선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 모든 것 이전에 계셔 말씀으로 창조를 시작하신 이가 하나님이심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앞서의 물고기 로봇과 함께 어느 때인가 사람 로봇이 그 분별이 힘들게 될 때에 이르러, 그 로봇은 낚시대를 구입해 물고기 로봇을 낚으며 로봇 자신의 삶을 즐기려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를 위해서 그 분야의 시장이 과거 산업화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듯, 세상에는 그런 투입, 생산, 소비, 재생의 순환 체계가 등장할 것이며, 이는 지구 밖으로 나가려는 모습, 주변 행성을 사용하려는, 해야 된다는 취지로 이어지고 그것과 부합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이는 새로운 것이 아니며, 소설, 영화, 전문가의 견해 등을 통해 오래 전부터 소개 되고 있습니다만, 실제 이루어져 긍정의 결과가 주되게 이루어 진다면 그에 대해서는 찬사를 보낼 수 있겠습니다. 인체 장기에는 나쁜 세균임에도 그것이 담당하는 역할 등에 의해 사람이 많은 음식섭취에 이르게 하기도 하는 부정적 모습과 함께 그 나름의 역할이 있음으로 좋은 세균과 함께 서식한다고 합니다. 삶에도 외적인 환경으로부터 그러한 나쁨과 그것으로 인해 사람을 자칫 피폐해지게 할 수 있는 가장 부정적인 모습에 이르지 않게 하려는 여러 노력이 중요하듯, 이 분야도 그것의 가능할 수 있는 부분을 어떻게 다룰 수 있는가 여부가 중요한 이슈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로부터 아예 통제하자는 등의 모습도 있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언젠가부터 로봇 교회의 존재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이 로봇에게 성경을 먼저 가르쳐야 하겠습니다. 어쩌면, 로봇 스스로 그 길에 들어설 가능성도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로봇의 등장은 피조물의 세상에 유익이 되는 존재로서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이 만들어 낸, 또 다른 가치적 모습으로서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그런 측면으로, 과거로부터의 컴퓨터의 발전과 근래의 소형화된 스마트 폰 등과 같은 다수의 과학 기술의 총아의 제품에 성경 말씀이 놓이게 하고, 이를 소통하게 하는 모습은, 결과적으로 이를 통해 정보를 얻게 된 과거로부터, 향후 등장할 본격적인 AI 로봇 스스로 이로부터 취합한 정보인 성경 말씀에 기초하여, 자신들의 역량화를 이루어 내는 긍정의 부분이 가능하다고 하겠으며, 이런 부분은 결과적으로 최초의 발명자가 의도하였건 아니건,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인도하심이라고 여겨질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생명체인 인간으로서의 할 일을 망각하고, 경각심을 놓아도 된다고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자신의 행위를 변론하고, 감추려는 많은 모습을 그 스스로 알지 못하고 사는 사람은 물론, 깨닳아 살고 있는 사람을 포함해, 가장 결정적이며, 최고이며, 유일한 방법의 해결은, 존재하는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정욕 없이 성령에 의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그 믿음의 사람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되게 살아가는 인생에게 만이 주어지는 어떤 비교 불가능한 유일무이한 가치에 이름이 그 방법인 것입니다. 이를 가늠해 보려는 여러 인생들의 시도와 더듬어 짚어 전달하는 가르침의 결국에 지시하는 그 가능성의 모습 등은, 예수님 그분을 영접함에 이르게 하는 것임을 어렴풋이 추정해 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그 정도의 모습도 인간의 삶 가운데는 좋은 모습에 있음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전하신 하나님, 하나님 그분이 그리스도 예수 되시어 세상에 전하신 그 가르침이 만고의 진리이심을 깨닳는 인생이 복 가운데 있음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Nov,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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